독서

다자이 오사무<인간 실격>

김줌줌 2018. 4. 27. 23:57


 부끄럽게도, 나는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까지의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집중력이 좋았던 사춘기 시절에는 고전이 따분할 것이라는 오만함이 있었는데 자라고 나서 보니 요즘은 현대소설보다 고전을 읽는 맛이 쏠쏠하여 이제서라도 차근차근 읽어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역시 마찬가지로 꼭 읽어야겠노라 마음 먹었던 작품 중 하나이다. 워낙 유명한 일본 작가이다보니 요즘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사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 실격>보다 <유다의 고백>을 먼저 읽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대표작을 먼저 읽는 유형은 아니다. <유다의 고백>을 읽게 된 것은 몇 구절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말할 작품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번에 <인간 실격>을 읽으면서 '다자이 오사무'가 필명임을 알게 되었다. (정말 본명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인간 실격>은 오히려 읽고 실망했다. 아마 내가 작품을 읽을 깊이 있는 안목을 갖추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데카당스(검색하고 처음으로 알았지만 19세기 프랑스 허무주의 문예사조라고 한다.)는 내 취향이 아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실격'한 사람의 허무에서 오히려 깊은 인간애가 있음은 느낄 수 있었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취향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유다의 고백>이다. 


 내가 주인공 요조와는 다른 범인이라서 그런걸까? 좀처럼 요조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요조가 여성을 규정하는 방식이었다. 여성이 읽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한걸까? 작가가 읽을 독자를 여성을 제외하고 규정한 기분이었다. 읽으며 어쩐지 난 더 쓸쓸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여성을 혐오했다고 완전히 규정짓기는 또 어려워서 괴로웠다. 그는 가부장제에서 남성의 행복이 여성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음에서 온다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그 아내의 '행위'를 남편이 용서하느냐 마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었지만 제가 볼 때 그것은 그리 고통스러운 것도, 커다란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용서하느냐 마느냐 하는 권리를 가진 남편이야말로 행복한 게 아닐까, (중략) 어쨌거나 남편 한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두루두루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인데,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입니다. (중략) 하지만 우리의 경우 남편에게 아무런 권리도 없고,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화를 내기는 커녕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하고 있고, 또 그 아내란 사람은 자신이 가진 보기 드문 미덕 때문에 그런 화를 입은 것입니다. 게다가 그 미덕은 남편이 전부터 동경해 온, 때 묻지 않은 신뢰감이라는, 견딜 수 없이 가련한 것이었습니다.

 때 묻지 않은 신뢰감은 죄가 되는가.


 순진한 아내 요시코가 한 장사치에게 겁탈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주인공 요코는 인간 신뢰에 대한 큰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겁탈을 당한 것이 자신임에도 남편인 요코의 눈치를 살피며 한 마디 못꺼내는 요시코에 대한 연민어린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 이런 장면을 보았을 때 요조는 허무주의에 빠지긴 했으나 진심으로 자신의 아내의 순수함을 동경해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시코가 화를 입었던 것은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던 그가 가지고 있던 미덕 때문이었으니 과연 이런 화를 입게 만드는 '미덕'이 진정한 '미덕'인지에 대한 큰 회의감은 사랑이 없다면 들기 힘들다. 그러니 여기서 요조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요조는 연민과 회의에서 멈춘다. 요시코에게 절대로 "내 눈치 보지마, 괜찮아."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하지 않는건지, 나는 허무주의라는 놈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허무주의는 문제를 발견하고는 거기서 멈춰버리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허무주의가 허무한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허무주의가 두렵다. 무섭다. 차라리 <유다의 고백>에서 예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그를 나락으로 빠트려버리는 유다가 더 좋았다. 적어도 그는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다. <인간 실격>은 내가 이해하기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요조를 동정하고 이해하지만 동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들었던 몇몇 구절들을 적어보겠다.


'인간을 지독히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의 모습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가 저를 죽여 주길 바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누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끔찍한 상대를 오히려 행복하게 해 줄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세상이란 개인이다.'

'인간, 실격. 이제 저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대의명분을 부르짖고는 있지만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또 개인.'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가 되나요?'

'용서하느냐 마느냐하는 권리를 가진 남편이야말로 행복한 게 아닐까,'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무서울수록 더 보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라지요.'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되나요?'

'네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널 말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