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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남과 북을 완독했다! 7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의 두터운 장편소설이라 요즘 체력이 말이 아닌 나로서는 드라마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피곤했다. 하지만 확실히 드라마만 보아서는 닿을 수 없었던 인물들의 심정과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알게되어 보람차고 뿌듯한 독서였다.
먼저 4부작 BBC 드라마 시리즈 <남과 북>과 비교하면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일단 소설인만큼 인물들의 속내에 더 집중하고 있고 또 사건들이 더 세세하게 적혀있다. 하지만 초반에는 따분할 정도로 늘어지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었다. 읽으면서 드라마는 각색을 참 드라마답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놀란 부분은 드라마와 전개가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희망을 주고 싶었는지 (...) 알 수 있던 전개들이 꽤 있다. 드라마에서 모호하고 희망차게 연출되는 부분은 원작소설에서 불행의 끝으로 달려가 결말을 매듭짓는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한편 원작소설에는 원작소설만의 서글픔이 가득 담겨있어서 좋았다. 드라마는 짧은 분량으로 마가렛의 성장보다는 당시 사회문제(자본가-노동자 계급간의 갈등)와 로맨스(마가렛-손튼)에 더 치중되게 보여준다. 하지만 원작소설 <남과 북>은 사회문학 소설이면서도 당시 여성으로서의 마가렛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여성주인공이기 때문에 마가렛의 서글픔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유독 공감되었던 두 장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헨리에게 청혼을 받은 직후에 느끼는 마가렛의 당혹감과 짜증스러움, 거북감, 그리고 피로감이였다. (물론 나는 마가렛처럼 아름답고 현명한 여성은 아니다.)
"용서하십시오!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제가 벌을 받는군요. 단지 바라건대 작은 위안이라도 될 수 있도록 아무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해주십시오. 당신이 사랑했을 수도 있는....." 하고도 다시 멈추었다. 그는 자신의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마거릿은 그를 고통에 빠뜨렸다는 생각에 신랄하게 자신을 책망했다.
"아! 당신이 이런 바람을 갖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답니다."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마거릿, 당신이 언젠가는 저를 연인으로 생각하게 될 거라고 기대해도 될까? 압니다. 아직은 아니겠지요. 급할 건 없지만- 언젠가는....."
그녀는 대답에 앞서 자신의 마음속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애쓰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전 당신을 친구로서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는 게 좋아요. 하지만 당신을 친구 이외의 대상으로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거예요. 부디 우리 두 사람 모두 여기서 일어났던 이 모든 대화는 잊도록 해요."
이 장면에서 마가렛이 느끼는 당혹감은 여성의 사회화에 대해 정작 여성이 어떻게 느끼는지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당신을 친구로만 생각했어요!'라는 말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현재까지도 자주 등장하는 대사이다. 하지만 이 대사는 단순 선호에 관한 대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가렛에게 헨리는 '친구'였지만 헨리에겐 마가렛은 '이성'이었다. 마가렛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이성'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는데 가부장 사회는 '여성'이 된다는 것은 친구와 같은 아주 보편적인 관계도 이뤄지지 않게 만든다. (그러니 '남녀관계에 어떻게 친구가 있을 수가 있어~' 라는 말들은 전부 가부장, 이성애 사회가 만들어낸 틀에 박힌 말이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여성은 자신을 책망한다. 성장할 뿐인데 달라진 자신과 그 주변의 관계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다. 그러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 지금 같은 어느 날 밤 그녀는 로맨스 소설에서 읽었던 적 있는 여주인공들처럼 용감하고 고상한 삶을, 두려움도 치욕도 없는 삶을 살겠노라고 혼자 맹세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의지만 있다면 그런 삶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의지뿐 아니라 간절한 기도가 함께해야 진정한 여주인공의 삶을 살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자신만 믿고 있다가 그녀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건 자신이 지은 죄의 당연한 결과이므로, 그 죄에 대한 모든 변명과 그런 죄에 이끌리게 된 유혹은 자신을 저 밑바닥까지 경멸하게 된 사람에게 영원히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 있어야 했다.
마가렛은 자신이 평생을 떳떳하게 살아가길 바랐다. 어릴 적에 읽었던 로맨스 소설 속 여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마가렛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고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이미 거짓말을 해버렸다는 사실과 어릴 적의 꿈이 산산히 조각나버린 것에 슬픔을 느낀 그녀의 마음은 위태롭고 애처롭다. 이 장면에서 신에게 자신을 굳건히 붙잡아달라 기도하는 그녀가 울고있다는 묘사는 하나 없었지만 나는 어쩐지 이 장면에서 그녀가 울고있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릴 적에 다짐했던 삶과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을 깨달았을 때만큼 묵직하고 숨막힐 정도의 서러움이 북받칠 순간은 없을 것이다.
또한 원작소설에서는 벨의 입장도 보여주고 있어서 어쩐지 눈물이 났다.
(...) 꿈속에서 그는 다시 지금 연구원직을 맡고 있는 대학의 강사였다. 때는 다시 여름방학이었고, 그는 막 결혼한, 당당한 남편이자 헬스턴의 행복한 목사인 친구와 함께였다. 조잘거리며 흐르는 개울물을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힘으로 뛰어넘었는데, 종일 공중에 떠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 앳된 아내는 잘생기고 헌신적인 남편에 대한 자부심에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짜증이 섞여 있는 바로 그 마음으로 집 안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런 사실을 벨 씨는 25년 전의 현실에서 알고 있었다. 그 꿈이 어찌나 실감 났던지, 그는 잠에서 깨자 자신의 현재 삶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여긴 어딘가? 멋진 가구가 갖춰진 조그만 런던의 한 호텔이었다. 바로 좀 전에 자신에게 말을 걸고, 주변을 오가고, 자신을 만졌던 사람들은 어디 있나? 죽었다! 묻혀 있었다!
벨이 찬란했던 헬스톤과 그 친우의 가족들에 대한 꿈을 꾸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묘사를 읽으며 나는 벨의 외로움과 혼자 남은 사람의 참담함을 느껴 가슴이 죄이는 것 같았다. 분명 이 다음 벨도 나처럼 마가렛에 대해 생각을 했을 것이다. 벨에게 마가렛이 왜 소중한지 알게 해주는 묘사였다.
소설 속에서 유독 인상에 남는 부분들이 바로 이 장면들이었다. 비록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이지만 인물들의 인생의 한 모퉁이를 담담히 읽어나가며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실을 할 것이라는 직감을 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좋았던 장면은 원작 마지막에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손튼과 마가렛의 결합을 기차역 장면으로 단 10분만에 시청자를 납득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베시와 마가렛의 우정 역시 더 친근하게 보여주고 있어 좋았다.
단순히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 글이지만 이 글을 읽고 누군가 드라마든, 소설이든 <남과 북>을 접할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 나답지 않게 다소 긴 글을 적은 보람이 가득 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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