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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제서야 감상을 쓰긴 하지만... (거의 두달만에 쓰고 있다. 반성한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지...)

나는 이 극이 정말 좋아서 7월 5일 뿐만 아니라 17일, 20일, 29일 이렇게 이미 4회차를 보았다. 역시 좋은 극은 금전감각을 잊고 순식간에 보게 된다. 

 먼저 나는 아직 이 책의 원작(소설)을 읽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화로 이미 접한 적이 있기 때문에 내용은 알고 있다. (따라서 원작과 연극을 비교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영화를 즐겁게 봤기에 영화와 연극을 주로 비교하며 글을 쓸 듯싶다.)


연극을 보러가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무대이다. 관객은 배우들이 올라오기 전의 무대를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면서 여기서 어떤 스토리가 진행될지 추측해보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많이 엿보이는 무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연극 백세노인의 무대는 정~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무대는 오직 다양한 크기의 서랍들로만 이루어져있는데 얼핏 세계지도의 모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대라 무척이나 설렜었다. 

 극이 시작되고 나서는 무대서랍들의 용도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서랍에서 필요한 소품을 꺼내쓰고 또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무대 위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연극적 상상력! 물론 각 서랍을 외워서 소품을 꺼내 써야하는 배우님들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내 양말 어디에 넣어뒀는지도 매번 헷갈리는 사람이다..) 연극을 보기 전에는 '이 내용으로요? 무대에서요?' 라고 생각하며 극장으로 들어갔는데 내 고민이 무색해진 좋은 연출이었다. (코끼리를 그렇게 재현할 줄은 몰랐다. 궁금한 분들은 기회가 되면 꼭 보러가길.) 


 사실 백세노인 스토리 자체가 백살 먹은 할아버지가 전세계를 아주 쉽게 오고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또 심지어 코끼리까지 나오는데 대체 어떻게 이걸 러닝타임에 맞출지 몰랐는데 이런 고민을 1인 다역이라는 아주 멋진 방법으로 풀어냈다. 특히 '이름표'라는 간단하고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통은 의상으로 1인다역의 배역은 구분이 가고는 한다. 하지만 백세노인은 아주아주아~주 바쁜 극이다. 옷갈아입을 시간이 없다. 이런 불편함을 최소한으로 간추린게 바로 '이름표' 구분법. 배우는 옷갈아입을 시간이 없어도 된다. 교복의 명찰처럼 이름표만 바꿔 갈아끼면 그 순간부터 그 배역을 연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연출방식을 잘 보여준 건 '키키'와 '부스터'라고 생각한다. 이 극만의 특성을 가지고 유쾌하게,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배우들은 열연을 한다. 서로 이름표를 사양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관객은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다. 재치가 엿보이는 장면.)

 그리고 극본 각색은 더 좋았다. 백세노인 스토리는 어떻게 읽어도 재미있지만 이걸 더 재밌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각색이라고 생각한다. 극본가의 치밀한 고민이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내가 너무 과대해석하는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석은 관객의 몫이니 그냥 쓴다. 

 이 극의 시작은 알란이 양로원의 창문을 넘어 도망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왜 알란이 창문을 넘어 도망쳤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역시 다른 알란들이 "알란이 창문을 넘어 도망쳤을 때의 펼쳐질 이야기를 먼저 알려줬어요." 라며 말하고 다시 알란이 창문을 넘어 도망치기 직전의 모습(극 초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알란은 무심히 극본가를 탓하며 으이구 수미'쌍'관(미묘하게 쌍으로 발음해서 더 웃겼다.)인지 뭔지.... 이러며 투덜거린다. 이런 수미'쌍'관은 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도 맞닿아있는데 알란이라는 캐릭터는 평생을 폭탄처럼, 어디로 터질지 아무도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는 늘 성냥을 그으며 살아온 인물이다. 즉 알란에게는 불을 긋는 행위 자체가 삶의 즉거움이자,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온 알란에게도 귀여운 작은 코 친구, '몰로토프'가 찾아오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 몰로토프는 알란에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전혀 다른 안정감을 주었다. 그건 바로 자유다. 알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온전한 사랑만을 주었던 몰로토프가 떠나고 알란은 삶의 기력을 잃어버린 채 갇힌 공간 '양로원'에 가게 된다. 

 양로원에서 자유를 잃고 통제되는 알란에게 몰로토프는 속삭인다. '알란, 불을 붙여요.' '계속 살아가요.' '성냥갑 흔들어요.' 그리고 불을 붙인 알란에게 몰로토프의 목소리는 "생일 축하해요, 알란." 이라며 그의 백세 생일을 축하한다. 살아가는 것을 축하하는 생일초와 알란의 삶을 이렇게 연결시킨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감동은 더 배로 다가와서 정신없이 울다온다. 


특히 나는 서현철 배우님의 연기에서 눈물 빼느라 정신없었다. 오용 배우님의 연기 역시 좋았다. 아마 분노는 오용 배우님의 알란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극 내내 초지일관 분노를 터트리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데로 보내던 서현철 배우님의 알란은 억눌린 감정을 터트리는 순간 훨씬 인간적이고 절규에 찬 모습이라 더 슬펐다. 

 정치색에 상관없이 그저 폭탄만 터트릴 수 있으면 어디든 갔던 알란의 이야기는 정치적이지 않았기에 더 정치적으로 느껴졌다. 과연 정치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과연 우리는 무엇을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좋은 극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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