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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극

2018. 05. 26 연극 <얼굴도둑>

김줌줌 2018. 5. 27. 00:31

*스포일러 주의



 사실 이 극을 보게 된 이유로는 여성작가의 작품을 더 많이 소비하고자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시놉시스만 아주 빠르게 훑어보고 간 이 작품은 내가 처음으로 보게 된 심리극이다. (맨 끝줄 소년도 심리극이라고 생각하지만 심리를 다루는 방식이 약간 다른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용의 극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 하였다. 

 티브이에서 많이 나오는 반항기의 딸 vs 그런 딸이 안타까운 엄마로 나올 줄 알았는데 확실히 왜 심리극이 심리극인지 알게 되었다. 


 먼저 이 극을 다 보고나서 떠올린 것은 담배에 붙어있는 여러가지 암 사진이다. 담배갑에 붙어있는 절개가 된 신체 부위 안쪽으로는 썩어들어간 듯한 검은 장기와 암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담배, 이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경고문구가 있다. 이 극은 내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 대한민국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병폐를 보여주기 위해 배를 절개해서 전부 보여주고 그걸 사진으로 찍은 후 경고를 한다. 그러나 그 후의 치유는 극에서 다루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까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나서 엑스레이까지 다 찍고 '아, 이게 문제였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그 후 수술을 받고자 하니 의사가 시술을 거부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극을 다 보고나서 자극적이고 날 것의 감정이 자꾸 치밀어서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나쁜 극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나 역시 딸이고 이 극과 비슷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엄마'를 향한 미움과 감정을 어찌 정의를 내려야할 지 울며 날밤을 샌 적도 있다. 이 극은 복잡한 모녀관계를 정확히 진단해주며 관계의 문제점을 알려준다. 이런 부분에서의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다고 느낀다. 특히 이 극의 연출이 좋았다. 

 잊지 못할 몇 장면들이 있다. 주인공 한민이가 '여자'와 만나는 엘레베이터 장면(CCTV를 연출하기 위해 무대를 실시간으로 영상으로 보여줬던 건 정말 좋았다.), 유원지 아르바이트 장면, 그리고 엄마와 한민이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받아드렸는지 보여주기 위해 극 앞뒤로 같은 상황과 다른 연출을 통해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 깊다. 


"엄마는 왜 나한테서 아무렇지 않게 가져갈 수 있었고, 나는 왜 무력하게 뺏겼던지."

"그래, 경계가 없어진거야."


 결국 폭발한 한민이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울면서 외치는 대사는 가슴에 쿡쿡 박혀서 들으며 나 역시 눈물이 흘렀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기이한 지. 그 틀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쉽게 침해 받는 지 깨닫는 대사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하게 자극적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한민이의 죽음을 보여주는 엘레베이터 장면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딸을 따라서가는 엄마의 연기도 보면서 버거웠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더 실감났다. 한 여성분은 마지막 장면에서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파란 조명을 자주 사용하고 또 파란 조명을 사용한 직후 바로 무대를 암전시키자 눈 앞에 과하게 빨개져 머리가 얼얼해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다. 

 그리고 형사의 서사가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는데 극을 다 보고 나오면서 어느정도 남성관객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 같았다. 다만 그럴 거라면 '굳이 형사에게 줘야했던 걸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나라면 차라리 한민의 남자친구에게 좀 더 많은 서사를 줬을 것 같다. 그래야 한민과 그 남자친구가 서로 처음 마음을 트게 된 이유도 설명이 될 것 같았다. 


아무튼 나쁜 극은 아니었지만 두 번 보기엔 굉장히 심리적으로 힘들고 부담스러운 극이었다. 또 어머니가 배를 만지며 '한민이와 나는 하나였다.'라고 말하며 삐뚤어진 모성애와 결핍을 보여주는 장면은 구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체적으로 내겐 버거운 극이었다. 

하지만 한번쯤 엄마에게 보여주며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함께 느껴주길 바라게 되기도 하는, 그런 극이었다. (물론 실제로 보여준다면 욕 먹을 것 같긴하다. ㅋㅋㅋ 불효자 소리를 듣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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